성찰과 나눔
십자가의 삶은 생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교회_최목사
2025. 7. 5. 11:08
우리를 끌어당기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그 자리에는 합리성이 아니라 신비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이 낯선 모습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_어두운 시대에 십자가를 선포한다는 것의 의미, 케네스 리치 지음 ㅣ 비아]
신학자의 정리된 표현은 우리를 깊은 고민과 성찰로 이끕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단어 하나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 공감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장 신학적이고 함축적이어야 할 교회 안의 언어가
어느 때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상투적이고 직설적이며 타인을 향한 폭력적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직설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로 타인을 함부로 비판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기 주장을 성급하게 '성경적', '복음적'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이 성급함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신비가 들어올 공간을 막아섭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교회여야 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주님의 신비, 신앙과 사랑이라는 삶의 방식과는 다른 상식과 합리성이라면, 자기중심적인 합리성이라는 굴레에 갇혀 주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이 어리석음은 주님의 신비는 경험하지 못하면서,
돈과 권력이 자극하는 욕망에 눈이 멀어 마치 그것을 가지게되는 것이 신비라고 착각하게 되지는 않을까요?